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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지금껏 브로콜리를 꽤 잘못 먹어왔습니다.
끓는 물에 푹 삶은 뒤 초장에 찍어 내는 것이 가장 무난한 방법이라고 믿어 왔거든요.
그런데 조리 시간 하나가 핵심 영양 성분의 존재 자체를
좌우할 수 있다는 걸 알고 나서 생각이 좀 달라졌습니다.
조리시간 오래 삶을수록 손해였다는 사실
집에서 브로콜리를 낼 때마다 냄비에 물을 올리고,
브로콜리가 어느 정도 부드러워질 때까지 데쳤습니다.
2~3분은 기본이었고, 가족들이 식감을 선호하는 편이라 그보다 더 오래 삶는 날도 많았습니다.
식감이 물러지고 특유의 냄새가 진해지면 오히려 손이 덜 갔는데,
그때는 단순히 기호의 문제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영양학적으로 꽤 중요한 문제가 숨어 있었습니다.
브로콜리의 대표 기능성 성분으로 꼽히는 설포라판(Sulforaphane)이
가열 방식과 시간에 따라 크게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설포라판이란 십자화과 채소에서 발견되는 이소티오시아네이트계 화합물로,
항산화 및 항암 작용과 관련해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성분입니다.
단순히 비타민처럼 부족하면 보충하는 개념이 아니라,
체내에서 특정 효소 반응을 통해 생성되는 구조라 조리 방법에 더욱 민감합니다.
충남대 이기택 교수 연구팀이 동아시아 식생활 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끓는 물에 브로콜리를 넣고 단 1분만 지나도 설포라판이 거의 소멸된다고 합니다.
반면 찜기를 이용한 스팀 조리 시에는 1분 경과 후에도 설포라판이 약 90% 유지되었습니다(출처: 동아시아식생활학회).
저는 이 수치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조금 허탈했습니다.
그동안 몸에 좋다며 챙겨 먹던 브로콜리에서 정작 핵심 성분은 거의 먹지 못하고 있었던 셈이니까요.
물론 찜기를 써도 3분이 넘으면 설포라판이 10분의 1 이하로 줄고, 10분 이상이면 결국 없어집니다.
조리 시간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지켜야 한다는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방향성 자체는 알아두는 것이 좋습니다.
설포라판이 사라진 브로콜리, 그래도 먹을 이유가 있다
그렇다면 오래 익힌 브로콜리는 그냥 의미 없는 음식이 되는 걸까요.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르게 봐야 합니다.
설포라판이 브로콜리의 중요한 성분인 건 맞지만, 브로콜리에는
그 외에도 비타민 C, 엽산, 베타카로틴, 비타민 K, 셀레늄, 루틴, 퀘르세틴, 식이섬유 등
다양한 영양소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 이 중 상당수는 가열해도 손실이 크지 않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알아두면 유용한 개념이 있습니다.
설포라판의 전구체(Precursor)인 글루코시놀레이트(Glucosinolate)입니다.
글루코시놀레이트란 십자화과 채소에 풍부한 황 함유 화합물로,
그 자체로는 생리활성이 낮지만 체내에서 효소에 의해 설포라판 등으로 전환되는 원료 물질입니다.
끓여도 글루코시놀레이트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이것을 설포라판으로 바꿔주는 효소인
미로시나아제(Myrosinase)가 문제인데, 고온 가열 시 이 효소가 불활성화됩니다.
그런데 미로시나아제는 겨자나 와사비 같은 같은 십자화과 식물에도 풍부합니다.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학교 연구에 따르면, 브로콜리를 먹을 때 겨자나 와사비를 함께 섭취하면
체내에서 설포라판 생성과 흡수가 유의미하게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University of Illinois Urbana-Champaign).
즉, 충분히 익혀서 브로콜리 내부의 미로시나아제가 사라졌더라도,
겨자 소스나 와사비를 곁들이면 글루코시놀레이트가 설포라판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생기는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고 나서 초장 대신 겨자 소스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맛의 조합도 나쁘지 않고, 영양 면에서도 훨씬 합리적인 선택이니까요.
영양흡수? 실제 식탁에 적용하는 현실적인 방법
지식은 알아도 식탁에서 실천하기가 막막하면 결국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게 됩니다.
제가 이번에 정리한 내용을 바탕으로 실제로 바꿔보고 있는 것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찜기로 1~2분 내 짧게 쪄서 겨자 소스나 와사비에 찍어 먹는다
2. 올리브유와 마늘을 넣고 살짝 볶아서 베타카로틴 흡수를 높인다
3. 불고기, 야채볶음, 떡볶이 등 익숙한 요리에 자연스럽게 섞어 넣는다
4. 생으로 먹을 수 있을 때는 샐러드에 넣어 설포라판을 가장 풍부하게 섭취한다
이 중에서 제가 직접 써봤는데 가장 효과적이었던 건 볶음 요리에 넣는 방식입니다.
가족들이 따로 낸 브로콜리는 잘 안 먹는데, 불고기나 볶음밥에 섞어 내면 별 저항 없이 잘 먹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건강을 위해 억지로 먹는 채소가 아니라,
요리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재료가 되니까요.
베타카로틴(Beta-carotene)은 지용성 비타민, 즉 기름에 녹는 성질을 가진 영양소입니다.
기름과 함께 섭취했을 때 체내 흡수율이 크게 올라가기 때문에,
올리브유로 볶는 방식은 설포라판 손실을 어느 정도 감수하더라도
다른 영양소 측면에서 충분히 의미 있는 선택입니다.
조리 방법마다 서로 다른 영양소가 부각된다는 점을 이해하면,
매번 한 가지 방식만 고집할 이유가 없어집니다.
브로콜리를 어떻게 먹느냐는 결국 꾸준히 먹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됩니다.
설포라판 최적 섭취를 위해 매번 찜기를 꺼내고 타이머를 재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다면,
겨자 소스 하나라도 바꿔보는 것이 훨씬 지속 가능한 변화입니다.
완벽한 한 끼보다 적당한 방식으로 매일 먹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영양 조언이 아닙니다.
특정 건강 문제가 있다면 전문 의료인과 상담하시길 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