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어릴 때부터 시금치는 그냥 나물 반찬 중 하나였습니다.
몸에 좋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지만, 왜 좋은지 따져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다 겨울 시금치가 추위에 얼지 않기 위해 스스로 당도를 높인다는 설명을 접하고 나서야,
제가 그동안 꽤 중요한 채소를 너무 무심하게 먹어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오늘은 겨울 시금치가 왜 더 맛있고 영양가도 높은지,
그리고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어떻게 먹어야 제대로 먹는 건지 정리해 봤습니다.
로제트 형태, 겨울 시금치가 맛있는 이유
겨울에 마트에서 시금치를 고르다 보면 여름 것과는 생김새부터 다릅니다.
줄기가 짧고, 잎이 사방으로 낮게 퍼져 있습니다.
이 형태를 로제트(rosette)라고 부릅니다. 로제트 형태란 줄기가 위로 자라지 않고
뿌리 주변을 중심으로 잎이 방사형으로 퍼지는 식물의 생장 방식입니다.
장미꽃을 정면에서 바라본 모양과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기도 합니다.
겨울 시금치가 이렇게 자라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람을 최대한 피하고, 낮게 펼쳐진 잎으로 겨울 햇빛을 넓게 받아 광합성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광합성(photosynthesis)이란 식물이 빛 에너지를 이용해 이산화탄소와 물을 포도당으로 전환하는 과정입니다.
겨울 시금치는 이 광합성을 통해 잎의 당 함량을 높이고,
그 결과 어는점(freezing point)이 낮아져 추위에도 얼지 않습니다.
어는점이란 액체가 고체로 변하기 시작하는 온도로, 당도가 높아질수록 이 온도가 내려갑니다.
바닷물이 민물보다 잘 얼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제가 막연히 "겨울 시금치가 더 달고 맛있다"고 느꼈던 게 사실은 이 생존 전략의 결과였습니다.
단순히 계절 차이가 아니라, 추위를 이겨내는 과정에서 채소 스스로
당도를 끌어올린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 나서 꽤 오랫동안 그 사실이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로제트 형태로 자라면 뿌리, 줄기, 잎에 영양분이 고르게 퍼지기 때문에
여름 시금치보다 영양가도 높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품종도 계절에 따라 나뉩니다.
여름 시금치는 주로 경기도 포천, 이천, 남양주 등에서 재배되는 서양종이고,
겨울 시금치는 전남 신안 지역의 섬초, 남해초, 포항초처럼 지역명을 딴 재래종이나 개량종이 대부분입니다.
한의학에서는 시금치를 파릉채(菠菱菜)라 부르며, 맛이 달고 성질이 서늘하며
조혈(造血) 작용이 탁월한 약재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조혈이란 혈액 세포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작용으로, 적혈구·백혈구·혈소판 모두를 포괄합니다.
옥살산, 제대로 알아야 결석을 피한다
시금치를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게 옥살산(oxalic acid) 문제입니다.
옥살산이란 식물이 외부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생성하는 유기산으로, 수산(蓚酸)이라고도 부릅니다.
시금치 100g에 약 972mg이 들어 있어 채소 중에서도 함량이 꽤 높은 편에 속합니다.
이 성분이 체내 칼슘과 결합하면 옥살산 칼슘(calcium oxalate)이라는 결정체를 만드는데,
이것이 쌓이면 신장 결석이나 요로 결석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솔직히 이건 처음 접했을 때 예상 밖이었습니다.
건강에 좋다고 생으로 갈아 마시는 시금치 주스 영상을 몇 번 봤는데,
그게 오히려 옥살산을 그대로 섭취하는 방식이라는 걸 몰랐습니다.
다행히 시금치의 옥살산은 92%가 수용성(water-soluble)입니다.
수용성 옥살산이란 물에 잘 녹는 형태로, 데치는 과정에서 상당량이 물속으로 빠져나옵니다.
그래서 데친 물만 버리면 옥살산을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5분 데치면 약 50% 제거되지만, 식감이 많이 무너집니다.
실제로 30~60초 짧게 데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짧게 데친 이후에도 남아 있는 옥살산은 어떻게 할까요.
여기서 흔히 잘못 알려진 정보와 실제가 갈립니다.
시금치와 두부를 같이 먹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으실 겁니다.
그런데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에서는
오히려 칼슘이 풍부한 음식과 함께 섭취하라고 권장하고 있습니다(출처: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
수용성 옥살산은 장에서 흡수되는데, 칼슘과 먼저 결합하면 불용성(insoluble)으로 바뀌어
장에서 흡수되지 못하고 대변으로 배출됩니다.
즉, 두부나 멸치처럼 칼슘 함량이 높은 음식과 함께 먹는 것이 옥살산 흡수를 오히려 줄여줍니다.
시금치 섭취 시 주의해야 할 궁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같이 먹으면 좋은 음식: 두부, 멸치, 견과류 등 칼슘이 풍부한 식품 (옥살산의 장내 흡수를 억제)
2. 피해야 할 조합: 근대, 비트 등 옥살산 함량이 높은 채소와 함께 먹으면 총 섭취량이 늘어 역효과
3. 함께 마시면 안 되는 음료: 홍차, 녹차 등 타닌(tannin) 성분이 풍부한 차류.
타닌이란 식물성 폴리페놀의 일종으로, 철분과 결합해 흡수를 방해합니다
4. 신장 질환자·결석 경험자: 수용성 옥살산 노출 자체를 줄이는 것이 우선이므로 섭취량 제한 필요
한 가지 짚고 싶은 건, 생시금치를 한 번 먹는다고 바로 결석이 생기는 것처럼 강하게 표현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맥락이 빠진 설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건강한 사람이 가끔 샐러드로 먹는 것과, 신장 기능이 저하된 사람이 매일 대량으로
생즙을 마시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팩트는 팩트로 정확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습니다.
피로 회복, 시금치를 실전 식단에 쓰는 법
저는 보통 시금치를 참기름과 소금으로 무쳐 먹었는데,
피로 회복이나 건강을 생각하면서 먹은 적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냥 밥상에 올라오면 먹는 반찬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금치의 조혈 작용이 세포 산소 공급과 직결된다는 설명을 접하고 나서는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혈액이 부족하면 세포에 산소 공급이 줄어 피로감이 먼저 옵니다.
하품이 잦아지고, 머리가 멍해지고, 자도 자도 피곤한 상태가 바로 그 신호입니다.
시금치는 적혈구 생성을 돕는 철분, 혈소판과 백혈구 기능 전반에 관여하는 엽산(folate)이 풍부합니다.
엽산이란 세포 분열과 DNA 합성에 필수적인 비타민 B9으로, 특히 조혈 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여기에 바지락을 함께 볶으면 시너지 효과가 생깁니다.
바지락에는 타우린(taurine)과 비타민 B12가 풍부한데, 비타민 B12 역시 조혈 작용에 직접 관여합니다.
타우린이란 아미노산 유사 물질로, 간 기능 회복과 피로 해소에 효과적인 천연 강장 성분입니다.
실제로 피로 회복용으로 마시는 드링크제에 타우린이 들어가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겨울 시금치가 속열을 풀어준다는 점도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겨울에는 추위로 인해 피부 혈관이 수축하면서 체내 혈류가 내부로 집중됩니다.
운동을 규칙적으로 해서 열 발산이 원활한 경우엔 괜찮지만, 움직이지 않고
칼로리 높은 음식만 먹으면 속열(内熱)이 쌓입니다.
속열이란 체표면의 열 발산이 줄어들면서 체내에 과도하게 열이 누적된 상태를 말합니다.
성질이 서늘한 시금치는 이 속열을 가라앉히는 역할을 합니다.
연말처럼 술자리가 잦은 시기에 간 피로와 주독을 푸는 데 특히 도움이 됩니다.
실제로 활용하기 쉬운 레시피로는, 시금치를 30~60초 데친 후
바지락, 다진 마늘, 칼슘이 풍부한 견과류를 함께 볶는 방식이 있습니다.
조리 시간이 10분을 넘지 않고, 피로 회복에 필요한 성분을
한 번에 챙길 수 있다는 점에서 실용적입니다.
영양제를 따로 챙기기 번거롭다면, 이 정도 식단 변화만으로도 몸이 달라지는 걸
느낄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